고조선과 연(燕)의 전쟁 전후 고조선의 강역 변화 ‒고조선이 상실한 ‘2,000여 리’의 실상과 범위를 중심으로‒

Changes in the Territory of Gojoseon before and after the War between Gojoseon and Yan ‒Focusing on the Reality and Scope of 2,000 Lis that Gojoseon Lost‒
  • 이성재

초록

고조선은 연의 침공을 받아 서부 지역 2,000여 리를 상실하고 만반한까지 패퇴하였다. 따라서 2,000여 리의 실상과 범위는 고조선의 강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쟁 당시 2,000여 리는 도보에 의한 이동 거리로 이해할 수 있다. 2,000여 리는 전국 시대 이정으로 보이며 약 748㎞로 환산되었다. 기점은 2,000여 리가 고조선의 서부 강역이므로 고조선과 연의 접경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랴오닝과 허베이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고조선과 연은 대략 서기전 4세기 무렵 롼허 유역에서 접경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00여 리의 기점은 대개롼허로 상정할 수 있다. 개전 직전 연은 내전과 외침으로 인해 망국의 위기를 겪고 국가 체제가 붕괴되었다. 때문에 롼허 중·하류유역 대부분은 고조선의 정치·군사적 세력권 내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연은 고조선의 감시가 미치는 롼허 유역이 아닌 구베이커우를 통한 산악 통로를 따라 우회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연군의 주요 행군 경로는 롼허를 도하하여 다링허를 따라 전진하다가 이우뤼산에서 북으로 우회하여 요동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 당시 현 요하 하류 지역은 현재보다 해안선이 내륙 쪽으로 북상하고 그 북쪽으로 광대한 소택 지역이 펼쳐져 있어 이우뤼산 남쪽으로의 이동은 곤란하였기 때문이다. 기점인 롼허에서 행군 경로를 따라 약 2,000여 리를 이동하면 랴오양 부근에 도달한다. 요컨대 2,000여 리의 지리적 범위는 롼허 유역~요하 평원이며 이 지역이 곧 고조선의 서부 강역이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2,000 여 리의 종점인 만반한은 요하 평원을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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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조선과 연(燕)의 전쟁 전후 고조선의 강역 변화 ‒고조선이 상실한 ‘2,000여 리’의 실상과 범위를 중심으로‒
제목 (타언어)
Changes in the Territory of Gojoseon before and after the War between Gojoseon and Yan ‒Focusing on the Reality and Scope of 2,000 Lis that Gojoseon Lost‒
저자
이성재
DOI
10.17320/orient.2020..81.17
발행일
2020-10
유형
Y
저널명
동양학
81
페이지
17 ~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