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실학 연구의 학술사적 의의

The Academic Historical Meanings of Early Reasearch on Silhak

초록

한국의 초기 실학 연구자들은 ‘실학’을 17~19세기 동아시아에서 이학을 비판하면서 유교를 새롭게 창신하였던 학술사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립하였다. 이 실학 개념은 동아시아 유교 연구자들에게 논쟁적 연구를 촉진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공유하는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초기 연구자들의 실학 연구는 기본적으로 국권을 회복하고 근대국가체제를 구축하는 구국과 변혁의 운동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 결과 사상의 변동을 근대를 지향하거나 근대로 나아가는 방향에서 읽고, 부국강병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그 의미들을 재조명하는 관점이 실학 연구를 주도하였다. 정인보 등 양명학 계열에서 강화양명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조선후기 양명학의 전개를 실학의 한 계열로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은 논쟁적인 부분이다. 현대 연구들에서도 ‘실심실학’으로 양명학 계열과 북학파를 연결하여 실학의 한 유형으로 파악하는 시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야는 조선의 실학자들이 주자학과 양명학의 심법心法에 대하여 함께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았던 맥락과 서로 부딪친다. 최익한이 「실학의 사적 발전」에서 양명학 계열을 포함시키지 않고, 정약용이 치양지설致良知說을 비판하였던 내용을 수록하여 제시한 것은 정인보 등의 논점과 상반되는 것이다. 실학에 대한 제2세대 연구자에 해당하는 홍이섭은 유교주의의 한 형태로 실학의 전개를 설명하는 시야를 제시하였고, 이을호는 실학자들의 경학을 재조명하여 경세론의 철학적 기반을 설명하는 시야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이후 실학 연구의 지평을 넓혀주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도 예학에 대한 연구는 빠져 있었다. 거기에는 근대로 나아가는 과학적 요소와 대척을 이루는 봉건 사회의 한계로 예학을 평가하였던 오리엔탈리즘적 선입관이 관여되어 있다. 실학을 동아시아 근세 유교의 전개과정 속에서 추구하였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예학을 포함한 유교 자체에 대하여 근대론의 선이해를 벗어나 설명하는 시야가 필요하다. 해방 이후 현재 이르는 실학 연구는 경세론 중심에서 경학으로 확대되었고, 2000년대 이후 실학자들의 예학에 대한 연구로 다시 더 넓어진 것은 경세론에 집중되었던 초기 실학 연구의 보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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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초기 실학 연구의 학술사적 의의
제목 (타언어)
The Academic Historical Meanings of Early Reasearch on Silhak
저자
이봉규
발행일
2020-06
유형
Y
저널명
다산학
36
페이지
9 ~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