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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 국경 이백리의 여성화 또는 군사화 —「압록강절」의 발생 및 유행—
초록
이 글은 1920년대∼1945년 패전까지 조선과 일본, 만주에서 널리 불렸던 일제의 신민요 「압록강절」의 발생과 유행, 그리고 가족관계를 형성하는 「백두산절」의 소개와 안내를 위해 작성된다. 두 신민요는 단순히노래로 불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음반과 서적, 무용, 그림엽서도 등 다양한 방식의 대중매체로 변용, 발매되었다. 장르 확장성이 그만큼 컸다는증거인데, 여기 담긴 식민주의적 문화정치학은 일본정신의 심화 및 영토확장에 관련된 제국의 심상지리를 내면화하기 위한 파시즘의 예술화와깊이 관련된다. 일제는 근린의 침략과 지배, 폭력적인 식민 지배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두산과 압록강을 포함하는 한만 국경지대의 여성화와 병영화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행했다. 그 미학적 방법과 장치를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매체들이 앞서 예시한 자료들이다. 이를 토대로 이 글은 첫째, 만주, 곧 한만국경지대에서 발생한 「압록강절」이 어떻게 일본-조선으로 전파되어 ‘국민가요’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파악했다. 둘째, 일본에서 음반과 무용, 노래 서적으로 대성황을 이루는 「 압록강절」의 이국취향과 식민주의의 본질과 성격을 살폈다. 셋째,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에 의해 서로 다르게 전유되고 가창되던 「 압록강절」의 양가성에 주목했다. 일본인은 식민정책 수행을 위한 제국의역량에 대한 자랑과 무지한 조선인의 계몽에, 조선의 문학예술인들은 이국의 문화에 대한 유희의 측면에 초점을 맞춰 노래했음을 밝혔다. 넷째, 새로 발굴한 「압록강절」 그림엽서를 중심으로, 이 엽서가 단순한 우편매체를 넘어 일제 식민주의와 군국주의를 선전하고 예찬하는 전쟁의 도구로 변질되어 갔음에 주목했다. 다섯째, 한만국경지대의 여성화와 병영화가 「압록강절」보다 늦게 출연한 「백두산절」에 의해 최후의 매듭이 지어졌음을 밝혔다. 그 정점에 만주국의 ‘오족협화」에 대한 선전선동을 담거나 태평양전쟁에 불을 붙인 진주만 습격을 그리고 노래한 그림엽서 「백두산절」이 놓여 있음을 확인했다.
키워드
- 제목
- 한만 국경 이백리의 여성화 또는 군사화 —「압록강절」의 발생 및 유행—
- 제목 (타언어)
- The Effeminacy and Militarization of the Border between Korea and Manchuria : Occurrence and Prevalence of Oryokkobushi
- 저자
- 최현식
- 발행일
- 2021-10
- 유형
- Y
- 저널명
- 만주연구
- 호
- 32
- 페이지
- 169 ~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