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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의 테니스는 서양에서 직접 수입된 론 테니스와 일본을 통해 변용된 연식정구의 두 계통으로 병립했다. 개화기에 서양인이 먼저 론 테니스를 들여와 즐기고 식민지화가 되면서 연식정구가 보급되었다. 첫째 서양의 론 테니스는 초대 주한 미국 공사 푸트를 통해 소개되었다. 한국체육사학계의 통설인 개화파 김옥균 도입설은 근거가 없다. 푸트가 꾸민 한옥 미국공사관 정원에 론 테니스 구장이 처음으로 조성되었다. 조선정부의 첫 외국인 고문관 묄렌도르프도 테니스 코트를 만들었지만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서양인이 정착한 서울 정동에는 테니스 코트가 여러 곳에 조성되었다. 1888년 결성된 서울유니온클럽은 미국공사관 앞의 공원부지에 테니스 코트 3개 면을 조성하여 회원들의 친목과 유대를 도모하는 스포츠로 테니스를 발전시켰다. 둘째 서양인이 많이 머물던 인천 제물포에도 일찍이 테니스 코트가 조성되었다. 1901년 결성된 제물포클럽 앞에도 테니스 코트가 들어섰다. 1902년부터는 서울과 제물포의 서양인들이 팀을 구성하여 테니스대회를 개최했다. 외국인 거주 도시 사이의 테니스 대회를 통해 서양인들은 친목과 유대를 도모했다. 셋째 일본식 연식정구는 소모품인 테니스 공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말랑말랑한 고무공을 만들어 변용하면서 탄생되었다. 통감부 관리로 들어온 일본인들이 1908년경부터 한국에서 연식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후 연식정구는 야외운동으로서 야구와 함께 널리 보급되었다. 개화기 서양인이 도입하여 즐긴 론 테니스는 한국 테니스 역사의 전사(前史)이면서, 다른 한편 장소성의 측면에서는 한국 테니스의 기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주체가 된 테니스는 론 테니스든, 연식정구든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키워드
- 제목
- 개화기 서양인의 테니스 향유
- 제목 (타언어)
- The introduction and enjoyment of tennis by Westerners During Korea’s Enlightment Period
- 저자
- 이영호
- 발행일
- 2022-02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학연구
- 호
- 64
- 페이지
- 545 ~ 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