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만 시기 백석의 산문과 「흰 바람벽이 있어」의 창작 과정 연구

A Study on the Creation Method of Baekseok’s “There is a White Wall ”
  • 고재봉

초록

이 연구는 백석의 재만 시절 《만선일보》에 게재한 산문, 「슬픔과 진실」ㆍ「조선인과 요설」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흰 바람벽이 있어」가 어떠한 사회적 맥락과 창작 과정을 거쳤는지를 밝혀보았다. 백석은 1940년 3월에 내선만 문화좌담회에 참석하여 작가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수모를 당한다. 일본어 창작에 대한 종용이 그것인데, 이 과정에서 조선 작가들은 선계-일본인이라는 어중간한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이 좌담회 이후 그는 두 편의 산문을 썼는데, 그중 「조선인과 요설」은 좌담회 내내 의기소침하였던 백석의 태도와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른바 요설꾼으로 아첨을 일삼으며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보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감 없는 비판을 한 것이데, 여기서 백석이 당시에 감지하였던 정체성의 위기 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그는 민족이 감내하는 수모나 비애를 직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그는 시인 박팔양의 시집 여수시초에 대한 감상문을 《만선일보》에 게재한다. 감상문인 「슬픔과 진실」에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말하며 박팔양을 상찬하다. 그런데 이 산문에서는 슬픔과 비애를 높이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표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백석이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기방어적으로 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년 후 발표한 「흰 바람벽이 있어」 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슬픔과 진실」에서 인용한 박팔양의 시 「가을밤」의 표현이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원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슬픔과 진실」은 상시적으로 모욕과 수모를 당해야 하였던 상황에서 제작된 산문이며, 박팔양의 시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를 구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글이 된다. 백석은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창작한 것이기에 그의 작품을 단순히 외로움을 토로하는 내향적 작품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백석은 조선인이 처한 사회적 위치로 인하여 사회적 인간관계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까닭에 그의 작품은 쓸쓸한 방안에 홀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최소한의 품위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를 야기한것은, 사회적 등급이나 계열이었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는 작품 안에서 이러한 종류의 계열화를 무화시키려 하였다. 그것이 「흰 바람벽이 있어」의 말미에 나오는 열거 즉‘의도된 무질서’의 의미이다.

키워드

BaekseokManchukuoManseon IlboEthnic Discrimination<There is a White Wind Wall >Intended disorder백석「흰 바람벽이 있어」「슬픔과 진실」박팔양만주국의도된 무질서
제목
재만 시기 백석의 산문과 「흰 바람벽이 있어」의 창작 과정 연구
제목 (타언어)
A Study on the Creation Method of Baekseok’s “There is a White Wall ”
저자
고재봉
DOI
10.19115/CKS.28.3.7
발행일
2020-12
유형
Y
저널명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28
3
페이지
207 ~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