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남부 지역의 동학여당(東學餘黨)과 서양종교

The Remnants of the Donghak Peasants’ Army and the Western Religion in the Southwestern Region of Chungcheongnam-do Province
  • 이영호

초록

이 논문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이후 동학농민의 동향을 서양종교와 관련하여 검토한 것이다. 동학여당(東學餘黨)이 천주교, 러시아 정교회[희랍교(希臘敎)], 야소교(耶蘇敎)에 투탁하거나 또는 그들 종교를 이용하여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한편 변혁운동을 모색하기도 한 양상을 검토했다. 일찍이 이양선이 출몰하여 서양에 대한 기억이 축적되어 있고, 종교적으로도 포교의 공백지대로 남아있던 충청남도 서남부 지역에서 서양종교를 이용한 동학여당의 활발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충청남도 서남부 지역은 부여와 보령을 잇는 선 아래 쪽 임천·한산·서천·비인·남포·홍산 지방이다. 천주교의 경우, 1895년 한산의 동학여당이 천주교에 들어가 개인적 원한을 갚으려 하여 분쟁이 생긴 사례를 검토했다. 한산군수는 이들을 체포하여 처벌하고자 했지만, 프랑스 선교사가 이들을 교인이라고 보호하면서 한국의 행정기관과 프랑스 측이 대립했다. 이들 동학여당은 천주교의 보호를 받아들여 결국 진실한 교인이 되었다. 천주교의 강력한 통제 하에서 동학여당이 변혁운동을 추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되어 갔다. 러시아 정교회와 야소교를 이용한 동학여당의 활동은 1899년 전라북도 일원에서 일어난 영학당운동과 관련된다. 영학당의 잔당들이 금강을 건너 이곳으로 넘어와 서양종교에 가탁하여 분란을 야기했다. 1900년 가을, 임천의 동학여당이 러시아 정교회 소속의 정길당(貞吉堂)이라는 여인과 결탁하여 러시아 정교회 교당과 십자기를 세우고 인근 각지에 지파를 두고 주민들에게 ‘작폐(作弊)’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사송아문(詞訟衙門)’을 칭하며 지방행정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서 1902년 보령과 남포의 동학여당이 야소교를 세워 십자기를 내걸고 ‘송실(訟室)’을 칭하며 역시 지방행정을 장악하려 했다. 이 두 사건의 주동자들은 서양종교의 종단과는 무관하여 보호를 받지 못했다. 보수유생들과 대결하고 있는 모습은 동학농민전쟁 때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영학당의 잔당인 이들 동학여당은 변혁에 대한 의지를 내면에 품고 있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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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청남도 서남부 지역의 동학여당(東學餘黨)과 서양종교
제목 (타언어)
The Remnants of the Donghak Peasants’ Army and the Western Religion in the Southwestern Region of Chungcheongnam-do Province
저자
이영호
발행일
2018-10
유형
Y
저널명
역사와 담론
88
페이지
307 ~ 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