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석 포스터 디자인의 특징」 발표문에 대한 질의답변문

초록

이완석은 산미협회 창립전(1946)부터 제19회 산미전(1968)까지 꾸준히 포스터를 출품했고 <서울바레-단>, <임원식 도미환송음악회>, <8.15 경축소품 미협전> 등의 경우처럼 공연홍보나 전시홍보를 목적으로 한 포스터들도 제작해 생전에 지금 남아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작업을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포스터만 남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중 하나는 포스터가 “잠깐 사용할 의도로 만들어지고, 사용된 후에는 대부분 바로 버려지며 보존되지 않고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 매체(ephemeral media)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을 공유하면서도 유럽의 경우에 초창기 포스터가 많이 전해지는 것은 한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포스터가 이른 시기부터 수작업으로 그려진 단품이 아니라 복제 가능한 석판인쇄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스터는 지금도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감각과 조형성, 창의적 컨셉과 아이디어를 서로 교류할 때 자주 활용하는 매체로 당대 그래픽 디자인 수준을 가늠하는 일종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홍보 수단이 다양하지 못했던 시기에 포스터는 선전과 홍보의 주요 수단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이번 이완석 포스터에 대한 본격적인 작품 연구를 계기로 20세기 한국 포스터의 전개과정과 특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관심이 커지기를 기대합니다.

제목
「이완석 포스터 디자인의 특징」 발표문에 대한 질의답변문
저자
KANG HYEONJOO
학회명
2023 이완석 학술발표회
개최지
예화랑
학회 개최일
2023-07-22 ~ 202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