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 "학계"의 형성과 "국가성(nationness)"

초록

중국에서 학계와 관련된 문제의식이 시대적․사회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한 것은 민국시기 이후이다. “학계”의 건립은 학술의 정치로부터의 자유와 자체의 독립적인 방식을 통한 권위의 창출을 통해 형성된다. 학술은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어떠한 외부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 학자의 개인적인 학문태도로서는 존중받을 수 있지만, 한 사회에서 “학계”의 권위는 종종 그 궁극적 쓰임과 용도의 목적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즉 학술의 권위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라는 일반적 선언이 아니라 국가건설이라는 근대적인 민족지상과제와 결부하여 주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근대 학인과 학계는 국가나 자본의 지원을 구하게 되고, 국가나 자본은 이들 학인과 학계를 자기발전의 토대를 구성하는 한 도구로 간주하는 것이다. 즉 학계는 국가의 중요한 한 부속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근대 학문연구의 이러한 성격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찍이 막스 베버가 지적한 바가 있는데, 그는 바로 중국에서 학계건립을 주장하던 시점인 1917년 학문연구와 연구자의 국가자본에의 종속을 경고하기도 하였다. 이는 연구자와 학계의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권위가 물질적 토대를 갖추지 못할 때, 결국 국가와 자본, 특히 거대 국가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면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학문의 국가학(국가의 중요한 한 정책적 사업이라는 의미에서)은 과학이 하나의 기술로 간주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특히 20세기 들어서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중국에서 서구의 학계를 모델로 한 20세기 전반 학계의 건립은 처음부터 국가학의 논리를 내재화시킨 가운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즉 학교나 국가, 자본의 지원 없이는 경쟁력 있는 학계라는 것은 존속하기 어려운 것이 20세기 학인이 직면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제목
중국 근대 "학계"의 형성과 "국가성(nationness)"
저자
CHA TAEGEUN
학회명
동아시아 근대 아카데미즘의 형성과 국가권력
개최지
성균관대 퇴계인문관
학회 개최일
2010-07-06 ~ 2010-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