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통신사행과 소라이학파(徂徠學派)의 화이론(華夷論)

18th-century Tongshinsa Exchanges and Hwaih-ron Theory of Sorai School

초록

본고에서는 오규 소라이의 화이론이 소라이학파 내부에서 어떻게 계승, 변용되어 갔으며 그사상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검토하였다. 소라이의 고제인 슌다이는 조선과 문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문명의식’을 바탕으로 예악을통한 상호 소통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슌다이의 제자인 칸카이는 이봉환과의 논쟁에서 일본 고유의 ‘神國觀’을 제시하여 중화문명이라는 공통의 담론 지반에 균열을 일으킴으로써 더 이상의논쟁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핫토리 난카쿠는 통신사의 시문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일본이 앞서 있다는 인식을 보였다. 일종의 혐오와 같은 정서가 그의 발문에는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시각은 그의 아들 하쿠히에 이르러서는 더욱 극단화되었다. 슌다이나 칸카이가 문명의 실현 정도를 가지고 경합하고자 했다면, 난카쿠와 하쿠히는 ‘武威’에 근거하여 일본을 중화라 생각했으며 조선을 대화와 교류의 상대가 아닌 배제와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카쿠다이와 난메이는 중국 중심의 화이론에서 탈각하여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상대주의는 문명권의 보편 이념을 무화시킴으로써 상호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소라이학파 내부에는 화이론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바,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행보와도 일정하게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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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세기 통신사행과 소라이학파(徂徠學派)의 화이론(華夷論)
제목 (타언어)
18th-century Tongshinsa Exchanges and Hwaih-ron Theory of Sorai School
저자
이효원
발행일
2025-05
유형
Y
저널명
한국학연구
77
페이지
117 ~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