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 식민지 토지조사의 인적 네트워크

Human Network for the Colonial Land Survey Projects Under the Japanese Empire
  • 이영호

초록

일본제국의 식민지 토지조사는 토지의 소유자 및 강계를 조사·측량하고, 그 결과를 토지대장과 지적도에 등록하며,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지조/지세를 부과하고, 토지대장에 등록된 토지소유자의 권리를 등기를 통해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토지조사, 지조개정, 등기를 통해 일본제국의 경제시스템에 어긋나지 않는 토지소유제도를 식민지에서 창출하려 한 것이다. 구래의 토지관행을 조사한 구관조사사업도 토지조사사업에 앞서서 또는 병행하여 시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일본제국이 식민지의 토지구관 및 토지조사를 대상으로 일본 본국과 식민지, 그리고 식민지 상호 간에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검토했다. 특히 토지구관 및 토지조사를 기획한 고위관료, 집행한 전문관료 등 인적 자원이 어떻게 양성되어 식민지에 파견되었는지 그 네트워크를 분석했다. 연구결과 몇 가지 특징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토지구관 및 토지조사의 인적 네트워크는 일본 관료제의 운영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다. 본국에서 양성된 관료들이 본국과 식민지를 구분하지 않고 파견 임용된 것은 일본제국 관료제의 구조적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제국대학 법학과 출신들이 관료가 되어 고위직에 진출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토지조사사업과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중시하면서 인맥에 의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오키나와, 대만, 한국/조선, 관동주, 만주국을 대상으로 토지구관 및 토지조사에 종사한 인적 네트워크는 [대만-관동주-만주]의 경로와 [일본-오키나와-한국]의 경로가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된다. 중국 경로는 청국 및 중화민국 지배영역이기 때문에 청국의 법제에 조예가 있는 인물이나 대만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이나 중국어에 능숙한 인물들이 진출하기 용이했다. 반면 대만과는 역사나 토지구관에 차이가 큰 한국에는 일본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진출하게 되는데, 주로 오키나와에서 토지조사에 참여한 인물들이 많이 이동했다. 셋째 구체적인 인맥의 양상을 살펴보면, 일본의 근대화가 서양의 사상과 제도를 도입하여 수행되므로 모두 서양에서 유학한, 중국 경로의 고토 신페이(後藤新平)와 오카마쓰 산타로(岡松參太郞), 한국 경로의 메가타 타네타로(目賀田種太郞)와 우메 겐지로(梅謙次郞)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메가타와 고토는 서양근대화의 지적 자산으로 무장한 선도자로서 자기 인맥을 형성하고, 이동할 때마다 그들을 발탁하여 업무 수행의 효율을 높였다. 오카마쓰는 교토대학, 우메는 호세이대학의 인맥을 동원했다. 두 계열의 인맥이 식민지의 토지구관 및 토지조사의 중국 경로, 한국 경로를 구축하여 경쟁했다. 결론적으로 일류학교 및 제국대학, 서양유학, 법학전공, 고시출신, 관직의 경험 등이 작동하여 일본제국의 고위관료가 양성되었다. 고위관리가 특정한 관직에 발탁되거나 이동하는 데는 지연, 혈연, 학연, 정치적 연고 등 인맥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했다. 구관조사 및 토지조사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특히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맥의 작동이 작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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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제국 식민지 토지조사의 인적 네트워크
제목 (타언어)
Human Network for the Colonial Land Survey Projects Under the Japanese Empire
저자
이영호
DOI
10.31791/JKH.2025.09.210.335
발행일
2025-09
유형
Y
저널명
한국사연구
210
페이지
335 ~ 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