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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기원전 109년 한(漢)이 고조선을 공격할 당시 제군(齊軍)이 배를 타고 건넜던 발해(渤海)와, 서기 612년 수(隋)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건넜던 발해(勃 澥)는 동일한 바다로서, 현재의 황해(黃海) 북쪽의 산동반도(山東半島)와 요동반도(遼東半島)로 둘러싸인 바다(현 발해)가 아닌 중국 내륙의 거대한 저수지 대(瀦水地代)로 비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발해군(勃海郡)이 하북성 중남부 중산국(中山國) 근처에 있다는『후한서(後漢書)』기록, 발해가 터졌다는(勃海 決) 『회남자(淮南子)』와『수서(隋書)』의 기록, 해(海)가 황하(河)로 기록되기도 했다는『사기집해(史記集解)』기록, 발해가 일반적인 바다(大海)와 달리 홍수(大水)로 범람했던 기사를 전하는『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 『북사(北史)』,『수서(隋書)』등 BC 1세기~ AD 7세기 기록들, 발해의 海(해) 가 물길이 끊어지기도 했던(斷水) 澥(해)라고 주석한 『사기색은(史記索隱)』 의 기록, 발해지역을 기준으로 주변이 육지였다는 사실(渤海左右郡), 고대 중원 내륙(하북성 남부 평원)에서 당(唐)시기까지도 구운소금(煮鹽)이 생산됐던점, 발해와 관련된 한(漢)부터 당(唐)까지의 역대 사서 지명들이 대부분 황하중하류(하북성 남부)를 중심으로 남북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 등을 통해 확인된다. 『사기(史記)』에 기록된 여러 바다 중 고조선을 공격한 전한(前漢) 무제(武帝) 시기에 발해(渤海)는 북해(北海)와 서로 구분되어 존재하던 바다였다. 이렇게 ‘발해가 북해가 아니라는 사실’은『사기(史記)』이외에도『후한서(後漢書)』,『진서(晉書)』,『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에 발해(渤 海)와 북해(北海)가 동시대에 각각 다른 바다로 등장하는 점으로 확인할 수있다. 고대 발해(渤海)가 현재의 발해가 아니라 당시의 또 다른 바다, 즉 하북성 남부 중원 내륙의 거대한 저수지대(瀦水地代)였다면, 전한(前漢) 정권이 고조선을 치기 위해 건넌 발해(渤海)와 수(隋) 정권이 고구려를 치기 위해 건너게 했던 발해(勃澥)를 현재의 발해와 동일시하는 기존 관점들은 재고되어야할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한(漢)부터 당(唐)까지의 발해(渤海) 위치 재고(再考)
- 제목 (타언어)
- Reconsidering the location of Bohai(渤海) Sea from Han(漢) to Tang(唐) Dynasties
- 저자
- 이기훈
- 발행일
- 2024-04
- 유형
- Y
- 저널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 & Convergence
- 권
- 8
- 호
- 2
- 페이지
- 7 ~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