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전환기 동아시아 製鹽業의 교류와 네트워크 - 卞國璇․張謇의 日本鹽業視察과 近代製鹽 시도를 중심으로 -

Exchange and Network of Salt Manufacture in East Asia in Transition to Modern Times - Inspection Tour to Japan and Attempts of Byeon Guk-Seon and Zhang Jian for Modern Salt Manufacture -
  • 유창호

초록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제염업은 서양염 유입과 천일제염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수천년 동안 가장 보편적인 제염기술 방식으로 존재한 煎熬製鹽法이 시장 경쟁력을 상실하며 그생존을 위협받는 처지로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염업의 위기는 한편으로 동아시아諸 국가들의 제염법과 염업제도의 개혁을 유도하는 각성제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1905년 일본이 鹽專賣制를 시행하기 전까지의 기간은 자유무역의 흐름을 타고 동아시아가근대적 제염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 거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본고는 일본의 염전지주 노자키 부키치로[野崎武吉郞], 淸國의 실업가 장젠[張謇], 그리고 대한제국최초의 鹽業技手 卞國璇이라는 3인의 제염가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당시의 제염기술 교류성과와 한계점을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때의 동아시아 제염업이 노자키 부키치로를꼭지점으로 하여 변국선과 장젠이 연결되는 일종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는 사실이다. 1899년 오카야마현[岡山縣]의 고지마[兒島]를 찾아가는 변국선의 행적, 그리고 4년뒤인 1903년에 역시 같은 곳을 방문하는 장젠과 장푸[蔣黼] 등 청국 시찰단의 행적을 살펴볼 때, 이들은 일본의 근대화된 제염업을 모델로 각기 ‘모방’ 또는 ‘변용’의 방법을 취해 자국의 제염법을 개량하려 노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각각 ‘실패’ 또는 ‘부분적 성공’에 머물고 말았다. 이와 같은 일본식 제염법 도입의 실패는 근대제염업이 단순한 기술적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고있다. 이에 걸맞는 근대적 금융기관이나 운송수단, 과학기술, 산업자본 등이 겸비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국가적인 차원의 염업정책과 법률적 기반이 갖춰져 있어야 했다. 또한 1905년 일본이 염전매법을 선포하며 자국의 제염업을 소위 ‘內地鹽業’으로 엄격히 보호하고, 關東州․한국 등 새로이 병합한 租借地 및 식민지의 제염업은 ‘外地鹽業’으로 구별하여 개발하기 시작한 뒤로는 중국과 피할 수 없는 시장 대결을 초래하고 말았다. 러일전쟁이전, 짧은 봄날과도 같았던 동아시아의 협력적 네트워크는 결국 이렇게 파국을 맞이하였고, 중․일 간에 제염업 대결은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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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근대전환기 동아시아 製鹽業의 교류와 네트워크 - 卞國璇․張謇의 日本鹽業視察과 近代製鹽 시도를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Exchange and Network of Salt Manufacture in East Asia in Transition to Modern Times - Inspection Tour to Japan and Attempts of Byeon Guk-Seon and Zhang Jian for Modern Salt Manufacture -
저자
유창호
DOI
10.23033/inhaks.2019..54.013
발행일
2019-08
유형
Y
저널명
한국학연구
54
페이지
401 ~ 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