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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00년 6월 16일 서양인 17명이 서울 유니언(Seoul Union) 독서실에 모여서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하 ‘한국지부’로 줄임)를 창립하였다. 한국지부는 1824년 왕의 칙허를 받은 영국 학회의 지부를 표방하였으나 런던보다는 한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의 의지로 설립되었고, 다른 지부들과 마찬가지로 본부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으면서 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학술지 『한국지부 회보(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이하 ‘회보’로 줄임)를 간행하였다. 이 단체는 창립 초기 다소 어려움을 겪었으나 1910년대 초 자리를 잡았으며, 태평양 전쟁으로 일제가 미국인 선교사들을 강제 귀국시킬 때까지 약 30년간 국내외 서양인들에 의한 한국 연구의 본진으로 기능하였다. 1947년 12월 18일 소수의 영미권 인사들에 의하여 재조직되어 작년에 창립 120주년을 맞았다. 이 논문은 1940~1940년 한국지부의 초기 역사를 1900~1916년, 1917~1928년, 1929~1940년의 3개 시기로 구분하여 다룬 결과 다음과 같은 고찰을 얻었다. 첫째, 존스(George H. Jones, 1867~1919),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이 창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게일은 존스와 헐버트가 한국을 떠난 후 한국지부의 정착에 기여하였다. 둘째, 한국 연구에 진정한 열정을 가진 영국국교회 선교사들이 있었다. 트롤로프(Mark N. Trollope, 1862~1930)는 존스, 헐버트, 게일과 마찬가지로 ‘선교사 겸 학자’였던 랜디스(Eli B. Landis, 1865~1898)의 영향으로 한국지부 초창기에 회보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는 1917년 이래 거의 매년 한국지부 회장으로 선출되는 한편 동료 선교사들이 한국을 연구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셋째, 1920년대 말부터 미국 선교사 2세들이 한국지부를 이끌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노블(Harod J. Noble, 1903~1953)과 맥큔(George M. McCune, 1908~1948)은 한국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학계에 진입하였다. 비슷한 시기 천주교 선교사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3~1974) 역시 한국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한국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키워드
- 제목
- 1900~1940년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와 서양인들의 한국 연구
- 제목 (타언어)
-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and Westerners’ Study of Korea between 1900 and 1940
- 저자
- 이영미
- 발행일
- 2021-08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학연구
- 호
- 62
- 페이지
- 163 ~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