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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조성당操省堂 김택룡金澤龍의 생애 주요 면모와 풍류 양상을 살피고 그가 창작한 시조의 산출 맥락과 의미를 탐색하였다. 김택룡은 경상도 예안禮安에 세거한 사족으로서 조목趙穆과 이황李滉의 학맥을 계승한 인물로서, 중년의 나이에 관직에 나아갔다가 광해군의 혼란한 정국을 목도하고 벼슬을 단념한 채 다시 낙향하여 치사한객으로 노년을 보냈다. 노년기 김택룡은 안정된 경제적 기초 위에서 연륜으로 보나 학문적으로 보나 지역 사회 안에서 높은 위상을 점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의 풍류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그의 풍류상은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거처 주변에서의 한거閑居와 독락獨樂. 지역 사대부들과의 풍류風流와 공락共樂이 그것이다. 김택룡은 여유로운 일상생활 속에서 홀로 집 주위의 정자, 누대, 연못, 시냇가를 거닐면서 계절이나 경치를 완상하면서 이에 대한 소회를 토로하기도 하고, 지역 사회 안에서 지연・혈연・학연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연회를 벌이고 질탕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 과정에서 시문을 향유하고 춤과 노래를 즐겼는데, 한시창과 국문시가가 함께 창수唱酬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택룡의 시조 창작과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언급하여야 할 부분은 그가 한글 사용에 능숙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요하게 살펴야 할 점은 지역과 학맥으로 이어지는 국문시가의 창작・향유 맥락이다. 특히 그가 공사간에 긴밀하게 교유했던 인물 중에 정구, 박선장, 정경세, 이시 등이 모두 시조를 창작하였다. 이처럼 김택룡은 16~17세기 경북 지역의 시조 작가들과 여러 층위로 얽혀 있는 바, 그의 시조 창작 또한 이와 영향 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김택룡의 시조 작품은 재출사의 권유에 대한 답변 형식이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소신을 표출한 것으로서, 정치 현실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명철보신을 꾀하는 독선獨善 의식과 더불어 안빈 속에서도 개결介潔함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처세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택룡은 16세기 이래 지속되었던 경북 예안 지역 사대부 풍류의 전형을 보여주며, 시가사적으로는 17세기 초반 퇴계의 문인 제자들로 이어지는 시조 창작의 흐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키워드
- 제목
- 조성당 김택룡의 예안 생활과 시조 창작
- 제목 (타언어)
- A Study on Kim Taek-ryong(金澤龍)’s Life in Ye-an(禮安) and Creation of Sijo
- 저자
- 조지형
- 발행일
- 2018-03
- 유형
- Y
- 저널명
- 국학연구
- 호
- 35
- 페이지
- 295 ~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