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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본 제국은 강제병합을 앞두고 한국 통치 자금의 부족분을 지세 증세로 채우려고 중단되었던 토지조사 사업을 실시하였다. 미추홀구의 조사는 1910년 12월~1911년 1월까지 실시되었고, 그 결과 미추홀구의 지적자료인 ‘토지조사부’와 ‘지적원도’가 제작되었다. 개항장이 설치되었던 곳들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산업화를 거치며 한국의 주요 도시로 성장하였기에, 우리 도시의 기원과 변화양상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개항장 내부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배후 지역의 상황 역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때 만들어진 지적자료는 6·25전쟁을 거치며 망실된 곳이 많다. 개항장이다가 1914년 府制가 실시된 부산, 목포, 군산도 『토지조사부』와 『지적원도』가 현존하지 않고, 보존된 곳이 인천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이 자료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이 글은 『토지조사부』와 『지적원도』를 이용하여 이 시기 미추홀구 지역의 토지 소유관계, 주민들의 계층구조와 생활상태, 토지 이용, 농업 형태, 동족 마을, 대지주의 존재, 개항장 거주인과의 관계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미추홀구의 자연 환경은 전체 면적 5,088,759평(16.8㎢) 중 경지 면적이 72%이며, 밭 46%·논 33%·임야 16%·택지 4%로 구성되었다. 4%의 국유지가 장의리·도화리에 분포했는데, 이것은 화도진의 屯土(장원)와 왕실 과수원(皇庄)이다. 지역 내 면적·인구 등에서 가장 큰 동리는 사충리였다. 미추홀구의 민간 소유지는 3,483,633평, 소유주는 909명이다. 지주는 한국인 82%, 일본인 15%, 청국 3%, 서양인 1%이며, 소유 면적은 한국인 76%, 일본인 19%, 청국인 3%, 서양인 2%이다. 개항장에서 벗어난 지역임에도 18%의 외국인 지주가 24.2%의 면적을 소유하였는데, 특히 장의리 토지 61.7%가 외국인 소유로, 개항장 내 조선지계(잡거지) 상황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부재지주는 관교리·문학리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토지소유 관계가 시대변화에도 변함없이 유지된 것이다. 사충리는 한국정부 소유 公田·庄土 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한성 고위층으로 흘러들어간 듯하다. 지주 계층은 영세농·소농 63.5%, 중농 24.6%, 부농 10.2%로 구분되어, 지주의 2/3가 토지의 1/4를 소유하고, 그 나머지가 3/4를 소유하여 토지편중현상이 극심하였다. 특히 영세농·소농은 한국인이 절대 다수이다. 이것을 1916년 인구통계와 대입해보면, 소작인·농업노동자·영세농 비중이 장의리(93%), 관교리(91%), 문학리(88%)가 가장 심하며, 미추홀구 전체로 확대할 경우 84%에 달한다. 즉 미추홀구의 호의 84%가 부두노동·농업노동 등에 종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추홀구에 10,000평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는 71명으로 전체 지주의 7.3%이고, 이들이 소유 토지는 38%로, 소수 대지주가 미추홀구 민간 토지의 40% 정도를 점유하였다. 이들은 한국인 70%, 일본인 21%, 청국인 6%, 서양인 3%이며, 이들은 미추홀구 45%, 인천부 35%, 서울 15%에 거주하였다. 개항장의 배후지라는 지리환경 조건으로 인천부 출신 지주들이 비중이 상당히 높은 점이 미추홀구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지주는 서북철도감부를 지낸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 이인영(李寅榮)이며, 일본 미쓰비시 재벌 총수 이와사키(岩崎久彌)가 일본인 최대지주이다. 미추홀구 지역은 개항장의 배후지로 半農半都市적 지녔기에 대규모 水田농업보다는 밭작물을 중심의 상업적 농업형태가 특징이다. 이러한 근교 농업적 토지 운영은 1890년 무렵 개항장 외곽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인천부의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인하여 시외로 이전함에 따라 미추홀구 지역이 근교 농업의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특히 제물포 개항장은 국제도시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다양한 서양·청국·일본품종의 작물이 이곳을 통해 전래되고 재배되었다. 일본인은 주로 서양품종의 과수를, 청국인은 중국 품종의 채소를 재배하여 주요 시장에 공급하며, 미추홀구 지역은 새로운 작물의 시험장 역할을 하였다. 끝으로 조선시대부터 미추홀구에는 다양한 성씨가 거주하였는데 그들은 홍씨, 구씨, 성씨, 공씨, 오씨, 하씨, 방씨, 채씨 등 이다. 이들은 인천이 이주자의 도시가 되기 이전부터 거주하여 온 ‘원류 인천인’ 혹은 ‘원류 미추홀구인’이다.
키워드
- 제목
- 1910년대 인천 미추홀구 지역의 토지 소유와 이용 상황
- 제목 (타언어)
- A Study on Land Ownership and Utilization in Michuhol-gu, Incheon in the 1910s
- 저자
- 추교찬
- 발행일
- 2024-02
- 유형
- Y
- 저널명
- 인천학연구
- 권
- 1
- 호
- 40
- 페이지
- 41 ~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