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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인천’ 행적과 강도지(江都志) 에 기록한 17세기 말의 강화도† - ‘인천학’으로서의 병와 이형상 연구 -
초록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조선 후기 인천 출신의 문장가이자 사상가·목민관·경세가, 실사구시학(實事求是學)의 선구자 등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주(全州)가 본관인 그는 효녕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으로 1653년 인천에서 출생하였고, 20대 중·후반에는 인천에 거주하면서 소과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후 경직과 외직을 두루 역임하게 되면서, 또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는 경상도 영천(永川) 및 상주(尙州)에서 우거(寓居)하게 되면서 인천과는 오랜동안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만년에 다시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생활하다 1733년 과천(果川)에서 향년 81세로 사망하였다. 이형상은 경학과 성리학은 물론 예학·역사·어문·지리·군사·종교·음악·그림·시문 등에 걸쳐 142종 326책이라는 다양하고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인천’과 관련하여 남긴 저술은 40대 초반에 정치적인 이유로 강화도로 들어와 잠시 우거하면서 그 지지(地誌)를 집필한 강도지(江都志) , 그리고 말년인 70대 말에 자연도(紫燕島. 현, 영종도)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지은 시문을 중심으로 모아 엮은 소성속록(邵城續錄) 이 있다. 이 논문은 ‘인천’과 이형상과의 관련성을 주목하여 첫째, 이형상의 출생지 비정 및 ‘인천’에서의 행적을 살펴보았고 둘째, 조선시대에 편찬된 최고(最古/最高)의 강화도 지지인 강도지 및 그에 수록된 ‘강화지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형상은 그의 생애 81년 가운데 크게 4차례에 걸쳐 26년간 ‘인천’에서 거주하였다. 4차례 기간은 첫 번째는 1세부터 9세까지의 소싯적 9년(1653~1662)이었고, 두 번째는 20세부터 28세까지의 청년기 8년(1672~1680), 세 번째는 42세부터 46세까지의 중년기 4년(1694~1698), 그리고 마지막은 76세부터 81세까지의 말년 시기 5년(1728~1733)이었다. 그런데 소싯적을 제외한 나머지 3차례의 기간은 대부분 자연도(1차: 25세~28세, 2차: 79세~81세 *총 5년 거주)와 강화도(42세~46세 *4년 거주) 두 섬에서 거주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병와가 가족과 함께 섬에서 생활하게 된 데에는 기근과 역병, 그리고 정치적 곤경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병와는 힘든 시기에 섬이라는 불편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도 문인이자 경세가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말년에 자연도에서 인천의 옛 이름을 제목으로 한 시문집 소성속록 (1731년)을 편찬했으며, 강화도에서는 강화도의 지지를 집필하고 거기에 지도를 그려 넣은 강도지 (1696년)를 편찬하였던 것이다. 이에, 두 저술을 통해 병와 생애 속에서의 ‘인천’ 행적, 그리고 병와가 기록한 17세기 말 강화도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병와는 소싯적 죽마고우와 놀았던, 그리고 가족의 희노애락이 켜켜이 쌓인 고향 인천을 그리워했다는 점, 또 병와는 논리적 궁구를 통해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 및 비리를 개선하려 했다는 점을 살필 수 있었다.
키워드
- 제목
-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인천’ 행적과 강도지(江都志) 에 기록한 17세기 말의 강화도† - ‘인천학’으로서의 병와 이형상 연구 -
- 제목 (타언어)
- Byeongwa(甁窩), Lee Hyeong-sang(李衡祥)’s Activities in ‘Incheon’ and the Description of Late 17th-Century Ganghwa Island in Gangdoji( 江都志 ) : A Study within the Framework as ‘Incheonology’(仁川學)
- 저자
- 임학성
- 발행일
- 2025-08
- 유형
- Y
- 저널명
- 인천학연구
- 권
- 1
- 호
- 43
- 페이지
- 7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