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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892년 1월 미국 북감리교 한국선교부는 배재학당 내 미이미활판소에서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를 창간하였다. 창간호는 창간사 없이 일반 기사 5편과 편집자 집필 부문을 합하여 37매로 꾸려졌고, 편집은 다년간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내한한 올링거(Franklin Ohlinger, 1845~1919) 부부가 맡았다. 이 잡지는 한국의 특정 분야에 관한 전문 잡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망라하여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종합 월간지로 출발하였다. 본 논문은 『리포지터리』의 창간부터 정간까지의 전 과정을 검토하여 잡지의 성격과 의미를 구명하였다. 첫째, 올링거는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에 관한 초보적인 연구 성과와 한국의 현재 상황을 다룬 글을 두루 싣는 종합 월간지로서 『리포지터리』를 만들었다. 선교 관련 기사로 잡지를 채우는 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 둘째, 1895년 『리포지터리』의 새로운 편집자가 된 아펜젤러와 존스는 ‘선교’와 ‘연구’를 잡지의 양대 관심사로 삼았다. 선교 관련 기사가 늘어나는 한편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다룬 학술적인 글도 꾸준히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1899년 말 아펜젤러와 존스가 동의한 것은 『리포지터리』의 폐간이 아니라 1년 휴간이었다. 복간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편집자들과 주요 필진들은 『리포지터리』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보(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와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를 창간하였다.
키워드
- 제목
-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1892~1898)의 성격과 의미
- 제목 (타언어)
-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Korean Repository, English-Language Magazine Published between 1892 and 1898
- 저자
- 이영미
- 발행일
- 2021-02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학연구
- 호
- 60
- 페이지
- 9 ~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