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초록
본 연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만연한 패배의식과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가늠해 보고 어떤 사관으로 역사서술을 해야 하는지, 동북공정을 비롯한 각종 문화공정에 대응해나갈 우리의역사관은 어떤 것인지 확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필자는 우리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식민사관의 뿌리가 17세기 정치계와 사상계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계열의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을 송시열의나라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우암 송시열의 위상이 당대 정치계는 물론 현재의 사상계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반면, 17세기 중·후반 소론계의 출현은 송시열을 위시한 노론과는 다른 노선을 구축해 나가는데 이들은 다양한 사안에 대한 토론 및 대화 문화를 바탕으로 소론계 고유 학풍을 형성해 나간다. 윤증과 박세당, 남구만, 박세채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 소론 학자들은 이후 정치, 사상에서뿐 아니라 역사와 국방 및 정음에 대한 고유한 학풍을 형성하는 시초가된다. 특히 송시열의 제자였음에도 그에 담담히 맞서 정치적 문제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노소 분당과 정국에 영향을 끼친 명재 윤증(1629~1714)으로 인해 조선 후기는 실학과 양명학의 전개라는 사상적 다양화를 가능하게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수차례 조정의 부름에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강학에힘썼던 윤증의 학풍은 강화도에 정착한 정제두로 이어져 “강화학파”를 형성하게 되고 정제두의 학맥은 그의 아들과 사위, 전주이씨 가문 내 이광명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전승된다. 한국 양명학의 대표적인 학자를 배출해낸 강화학파는 이충익-이면백-이시원/이지원-이건창/이건승/이건방 계열로 이어져 200년간학풍을 지속하고 이후 19세기 말 정인보에게로 그대로 이어진다. 반면, 남구만(1629~1711)은 윤증과 같은 시기에 태어났으나 활동 방향은 달라 고위 관직을수차례 역임한 관료이자 학자이면서 문장가이다. 남구만에서부터 이익, 이종휘와 김교헌, 장도빈에 이르는 학맥의 계승 관계는 특히 국경 지역 영토에 대한 인식과 동음에 대한 주체적 해석을 하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시대별의 흐름에 따라 호칭은 변화되었으나 소론계열의 학문을 현대의 키워드로 표현하자면 ‘홍익인간’이 되기 위한 실천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학풍은 인간됨을 학문의 지향점에 놓고 민족주의 역사학을 정립하면서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게하였다. 또한 19세기 말 정인보에게, 20세기 윤내현에게, 21세기 이덕일과 복기대 및 역사연구단체에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을 지키고자 하는 민족사관으로 이어져 계승 발전되고 있다.
키워드
- 제목
- 소론 이후 강화학파에서 계승된 민족사학의 지식계보
- 제목 (타언어)
- Knowledge Genealogy of National History inherited from the Kanghwa School after Soron
- 저자
- 송옥진; 김석원
- 발행일
- 2022-09
- 유형
- Y
- 저널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 & Convergence
- 권
- 6
- 호
- 3
- 페이지
- 543 ~ 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