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반 나선정벌의 재조명: 조선의 북방영토의식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Reexamination of the Naseon Campaign in the mid-17th century Focusing on its connection with Joseon’s northern territorial consciousness

초록

나선정벌은 조선시대에 청의 요청에 따라 1654년과 1658년 2차례에 걸쳐 조선의 조총포수들이 파병되어 흑룡강 유역에서 송화강 상류 지역까지 남하한 러시아 세력을 청군과 함께 격퇴한 사건이며 이를 계기로 1649년부터 1688년까지 지속된 러시아와 청 사이 국경분쟁에 있어 상황이 청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오늘날 한국사 연구자의 다수가 반청복명(反淸復明)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당시 조선 사회가 가졌던 나선정벌에 대한 소극적 부정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나라가 국력에 관계없이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공동의 적과 맞서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다. 중요한 것은 당시 조선이 나선(러시아)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느냐에 관계없이 그 세력이 조선에도 위협이 된다고 인식하였느냐 달리 말하면 공동의 적으로 인식하였느냐이다. 조선군 조총부대의 역할에 대한 폄하도 객관적이지 않다. 당시 조선 병력은 전부 조총수이므로 일반 보병이나 기병보다 비중을 크게 보는 것이 맞다. 청군이 화력(火力)이 부족하였고 더구나 우수한 개인 화기를 소지한 러시아군을 상대하는데 있어 조선 조총부대의 역할을 결코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되며,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조선 조총부대는 상당한 기여를 했다. 조선 조정이 나선정벌 참여를 결정할 당시 사서 기록을 보면 청의 사신이 와서 파병을 요청하니 즉석에서 동의하고 파견 장수까지 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1637년에 조선이 삼전도 항복으로 청에 복속된 처지이긴 하지만 그렇게 일사천리로 파병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특히 조-청 연합군의 전투 대상인 ‘오랑캐(나선)’의 위치가 어디냐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고 본다. ‘나선’세력이 출몰한다는 영고탑 지역은 우리 역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역이다. 그 지역은 발해의 상경용천부, 고려의 화주와 연관이 있는 지역이며 특히 조선 태조 이성계 집안의 근거지로서 아마도 조선 행정구역상 경원도호부 관할이거나 인근 지역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선이라는 정체불명의 외적이 조선의 북방 경계에 근접하였다는 사실은 안보 측면에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선정벌에 관한 연구에 있어 나선정벌을 폄하하거나 미화하거나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청이 요청하였다는 점이 나선정벌 그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가로막는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청이 요청하였다는 것은 청이 나선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고 적어도 당시에는 조선의 도움이 아쉬웠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만일 러시아 원정대의 남하를 내버려두거나 막지 못하면 그들이 두만강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고 누구나 생각하였을 것이다. 나선정벌 파병 결정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서 당시 조선 조정의 북방 경계에 대한 인식 또는 북방영토 의식을 논하는 것은 특히 국경사 연구의 관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키워드

나선흑룡강(아무르강)송화강변립신류『북정록』『갈암집』영고탑NaseonHeilongjiang(Amur)SonghuajiangByeonripSinryu『Bukjeongnok』『Galamjip』Yeonggotap
제목
17세기 중반 나선정벌의 재조명: 조선의 북방영토의식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제목 (타언어)
Reexamination of the Naseon Campaign in the mid-17th century Focusing on its connection with Joseon’s northern territorial consciousness
저자
박병환복 기 대
발행일
2025-02
유형
Y
저널명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 & Convergence
9
1
페이지
7 ~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