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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仁川 永宗島 주민의 通婚 양상-“1867년 永宗鎭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초록
17세기 중엽 조선 정부는 江華島를 중심으로 海防 체제를 강화하는 일환으로 南陽都護府 永宗浦에 있던 永宗鎭을 1653년에 인천 앞바다에 있는 紫燕島(현 永宗島)로 이설하였다. 이후 영종진은 몇 차례의 변천 과정을 거쳐 1758년 獨鎭으로 승격되어 해방 체제의 중심지로 변모하였고, 섬으로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등의 정책을 실시하면서 水軍防禦營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獨鎭은 軍政뿐 아니라 戶政 및 田政 등도 독자적으로 운영하여 그에서 거둬들인 稅收를 수군진의 자체 재원으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영종진에서는 3년마다 戶口 조사를 실시하여 戶籍을 작성하였을 것인데, 현재 그 소재가 확인된 호적 자료는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된 1867년도 호적대장 한 책만이 유일하다. 이 글은 “1867년 永宗鎭戶籍”을 분석하여 자료에 수록된 營下面(紫燕島와 月尾島)․三木面(三木島와 薪佛島)․龍流面(龍流島와 舞衣島) 거주 주민들의 通婚 양상을 考究한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19세기 중엽 영종진 관할 섬들에서 거주한 戶首와 妻의 상위 姓貫 분포는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둘째, 영종진 관할 섬들에서 거주한 거대 성관들은 서로 중첩된 통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셋째, 거대 성관들은 戶首 당대뿐 아니라 累代에 걸쳐 특정 성관들과 집중적으로 통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넷째, 특정 성관과 집중적으로 통혼 관계를 맺은 거대 성관은 대체로 상층 신분의 출신들이었다. 다섯째, 어느 형제의 사례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주민들의 통혼망은 영종진 관할 영하면․전소면․후소면․삼목면․용유면의 전 지역에 망라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1867년 永宗鎭戶籍” 자료에서 나타난 ‘지역 內婚’과 ‘특정 성관끼리의 중첩된 통혼’ 양상은 육지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맺기 어려운 섬 지역의 특성(즉, 고립성? 기피성?)이 반영된 것이며, 이와 아울러 섬 주민들 간의 통혼을 통하여 水軍鎭의 軍役 자원을 원활하게 충당하려는 정책 및 관례가 지속된 결과였다고 해석하였다.
키워드
- 제목
- 19세기 중엽 仁川 永宗島 주민의 通婚 양상-“1867년 永宗鎭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 제목 (타언어)
- Marriage Patterns of Residents of Yeongjong Island in the Mid-19th Century-An Analysis of “Census Register of Yeongjong-jin, 1867”-
- 저자
- 임학성
- 발행일
- 2022-02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학연구
- 호
- 64
- 페이지
- 475 ~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