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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에서는 음력 12월 인(寅)일에 경주 남산에 있는 신성 북문에서 팔사(八䄍)에 대한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팔사제는 신라 고유의 제사는 아니고 신문왕 때 당나라로부터길흉요례를 받아들여 사전(祀典)을 정비할 때 받아들인 사제(蜡祭)인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팔사제는 중국의 사제와 다른 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 중국에서는 풍년이 들 때만 사제를지내고 흉년이 들면 사제를 지내지 않았다. 하지만 신라에서는 풍년과 흉년이 든 해에 모두팔사제를 지냈다. 다만 사제에 올리는 제물이 달랐는데 풍년에는 대뢰(大牢)를 사용하고 흉년에는 소뢰(小牢)를 사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대뢰는 소, 양, 돼지를 가리키며 소뢰는 양과돼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신라와 관련된 유적에서 출토된 짐승의 뼈들 중에 양의 뼈가 발견된 경우는 없었으며 기록에도 신라에서 백마와 소를 희생제물로 삼았다는 기록은 있어도 돼지와 양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로 쓴 것은 소외 돼지를 제물로 쓴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대뢰는 소를 말하고 소뢰는 돼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울진봉평신라비 등 신라의 금석문에서 제물로 반우(斑 牛)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보면 대뢰는 반우(斑牛) 즉 칡소였고, 소뢰는 돼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로 당나라의 정관례에서는 납제(臘祭)가 벌어지기 전에 사제(蜡祭)를 드렸고 개원례에서는 사제와 납제가 모두 납일에 벌어졌다. 하지만 신라에서는 납제는 보이지 않고 사제만 드린다는 점도 중국과 다른 점이다. 또한 제사의 대상이 중국에서는 백신(百神)이지만 신라에는 팔신(八神)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것은 신라가 받아들인 사제(蜡祭)가 중국의 정관례, 개원례 등 당나라의 예법이 보다는 예기 에 가까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로 삼국사기 「제사지」에는 12월 팔사제가 한 해 농경제사의 첫 순서로 쓰여있다. 이것은 신라인들의 전통적인 세시관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월의 전달인 음력 12월을 단순히 한 해가 끝나는 날로 생각하지 않고 정월의 연장으로 생각한 것을 볼 수있다. 신라에서도 연말과 연초를 하나의 연장선상에 놓고 생각했고이것이 12월의 팔사제를 앞에 놓게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신라의 팔사제는 당나라로부터 길흉요례의 전래와 함께 신라에 사전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생겨났지만 신라 문화의 영향으로 당나라의 사제(蜡祭)와는 제사방식에 있어 차이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 제목
- 신라 팔사제(八䄍祭)의 양상과 특징
- 제목 (타언어)
- The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Silla's Palsaje
- 저자
- 김영준
- 발행일
- 2022-08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학연구
- 호
- 66
- 페이지
- 407 ~ 432